힐링 대신 지적만족… 공부하는 직장인 '직딩 열풍' 왜?

입력 2017-09-15 18:03  

커버스토리

'빨간펜 어른이' 벌써 5만명…성인 교육시장 3조원
"학습지 비용 저렴하고 자유로워"
구몬 성인 회원 5년 만에 세 배로
외국어 과외 받고 코딩 교육도 인기
돈 내는 독서 커뮤니티에 사람 몰려

"주입식 교육 벗어나 배움 재미 안 것"
vs
"불안한 미래…자기계발에 몰두"



[ 이현진/김보라 기자 ]
‘빨간펜 선생님’으로 유명한 구몬학습 성인 회원 수는 2013년 1만8000명에서 현재 5만여 명으로 늘었다. 구몬학습 성인 회원 10명 중 7명(74%)은 외국어 과목을 공부한다. 일본어가 32.6%로 가장 많고 영어 21.8%, 중국어 16.6% 순이다. 학원보다 가격이 싸고 시간과 장소 활용이 자유로운 게 가장 큰 장점이다.

한 달에 3만원대면 학습지를 받아볼 수 있고, 실력에 따라 학습량과 난이도가 조정된다. 구몬일어 회원인 30대 정모씨는 “학습지는 남들 신경 안 쓰고 공부하기 때문에 진도가 느리더라도 제대로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학습지뿐만이 아니다. 성인 교육시장은 5~6년 전부터 성장세가 가파르다. 공부 범위와 방식이 확장되면서 성인 과외, 코딩 학원, 독서 커뮤니티도 늘었다. 업계는 취미활동을 제외한 성인 교육시장 규모가 약 2조5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문화 예술 분야까지 합치면 3조원에 달할 것으로 본다. 한때 직장인의 소비 트렌드가 ‘힐링’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지적 만족’과 ‘미래에 대한 투자’로 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어린이 전용 ‘옛말’…학습지 ‘큰손’으로

구몬, 눈높이, 재능교육 등 학습지 업체들은 과거 유아나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했다. 국어와 수학 등이 주력 과목이었다. 원래 학습지는 연령 제한을 두지 않고 단계별 학습이 가능하지만 국내에서는 ‘어린이용 학습지’라는 인식이 워낙 강했다.

몇 년 전부터 바뀌었다. 학습지를 한 번 접해본 성인 회원들이 주변에 “학원보다 낫다”며 입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자녀가 학습지를 푸는 것을 보며 함께 시작한 부모들도 있다. 교원그룹 관계자는 “대부분의 성인 회원은 30대이고, 어릴 때 한 번쯤 학습지를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며 “비용이 저렴하고 자신의 능력에 맞게 속도조절을 하며 공부할 수 있어 회원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했다.

구몬 성인 회원 중 약 30%는 수학, 한자 등을 수강한다. 자녀 교육을 위해 부모가 다시 기초부터 배우는 경우도 꽤 있다. 9살 아들을 둔 김정인 씨는 “아이가 수학 문제를 물어보거나 길에서 본 한자가 뭐냐고 물어볼 때마다 바로 답을 못해 당황스러운 경험이 많았다”며 “기초부터 다시 되짚어 보면서 아이 눈높이에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외하는 직장인…코딩 배우기 열풍

과외하는 어른들도 빠르게 늘고 있다. 최근 외국어 과외 사이트에서는 선생님을 구하는 직장인, 학생을 찾는 선생님이 크게 늘었다. 대기업 5년차인 이현정 씨는 금요일 저녁엔 일본어 과외를, 토요일 오전에는 영어 과외를 받고 있다. 이씨는 “외국에서 전화가 오거나 해외 바이어를 만날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학원도 다녀봤지만 빠지는 날이 많고 진도가 늘 제자리라 과외 선생님을 구했다”고 말했다.

직장과 과외 선생님을 병행하는 ‘투잡족’도 생겼다. 미국 시민권자인 회계사 조성훈 씨(32)는 2년 전 회사 선배 부탁으로 영어 지도를 시작했다가 지금은 학생 4명을 가르치는 스터디 그룹을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은 모두 공무원이나 직장인이다.

코딩 교육도 인기가 높다. 컴퓨터 언어를 이용해 프로그램을 짜는 코딩 능력을 중시하는 회사가 많아져서다. 컴퓨터학원 KG아이티뱅크의 문준 컨설팅담당자는 “3년 전부터 직장인 수강생이 늘고 있다”며 “일반 직장인도 코딩을 이해해야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공부하는 게 스트레스 해소법이라는 이들도 적지 않다. 쉬는 날 침대에 늘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땐 자괴감이 들지만 규칙적으로 공부하면 성취감이 든다는 것이다. 1년째 중국어 과외를 받고 있는 공무원 박모씨(33)는 “6년차 사회인이 되니 성취감을 느낄 일이 많지 않다”며 “직장에서 채우지 못하는 자존감을 공부로 충족한다”고 말했다.

공부의 참재미 vs 강박적 자기계발

시장이 커지자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스터디서치’는 해외 경험이 있는 유학생이나 동포, 외국인과 외국어를 공부하고 싶어하는 사람을 연결해주는 플랫폼이다. 설립 2년 만에 누적 회원 수가 2만5000명, 개설된 누적 스터디는 3500여 건에 달한다. 스터디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주 2만~3만원, 8~12주 기간으로 꾸려진다.

독서 커뮤니티 ‘트레바리’는 특정 주제의 클럽에 참가해 한 달에 한 번 책에 대해 토론하고 글을 쓰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4개월에 19만~29만원의 회비가 있지만 인기 있는 클럽은 언제나 매진이다. 윤수영 트레바리 대표는 “다른 사람과 함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며 생각을 나누는 것은 혼자 독서하는 것과 질적으로 다른 행위”라며 “지적 욕구를 충족시킨다는 점에서 멤버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직장인의 뒤늦은 공부 열풍의 이유로 ‘주입식 교육으로부터의 해방’을 꼽는다. 취업과 입시의 압박으로 미뤘던 진짜 하고 싶은 공부를 성인이 돼 뒤늦게 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이유다. 자기계발에 대한 일종의 강박관념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주장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직장을 옮기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재교육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단순히 직무와 관련돼 공부하는 것뿐 아니라 인공지능(AI) 발달 등으로 급격히 변하는 사회에 초조함을 느끼며 자기계발에 몰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과 자기 시간을 구분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된 것도 한몫한다. ‘저녁이 있는 삶’이 중시되면서 퇴근 후 공부할 여유를 갖게 된 사람이 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외 수업을 받거나 독서모임 등에 나간다는 사실을 회사에 숨기는 이들도 많다. 3년째 독서모임을 하고 있는 이모씨(38)는 “우연히 회사에 알려졌는데 상사가 ‘책 읽을 시간도 있고 좋겠다’고 비꼰다”며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아도 일단 들키지 않는 게 상책”이라고 말했다.

이현진/김보라 기자 ap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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